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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광장

자랑스런 육사인상-2015권동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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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찬 박정기
주요공적
 
유년기 및 청년시절 활동
  권동찬 동문은 1919년 2월 15일 강원도 철원의 동송에서 출생하여, 1934년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철원공립보통학교 고등과에 입학하여 1936년 3월에 졸업하고, 경성지구법원 철원지청에 취직하였다.
이후 1937년 12월에는 경성지구법원 검사국장으로 영전하였으며, 1940년 7월 철원세무소에 취직한 후 징용과 공출 등 일본의 압정으로 만주로 건너가 만주국립청년특별연성소에 들어가 구대장에 취임. 만주에 거주하년 찬국청년들에 대한 훈련을 담당하게 되었다.
해방 후 고향인 철원으로 돌아온 그는 동네 청년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밤에는 문맹퇴치 활동에 주력하던 중 북한의 공산화에 염증을 느끼고 서울로 월남해 1946년 2월 20일 국방경비대 제7연대에 입대하였으며, 9월 23일 태릉의 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로 입교하여 12월 14일 졸업과 동시에 육군 참위로 임관되어 군번을 부여받았다.
 
군 생활 및 6.25 참전
  1947년 1월 제5연대에 배속되어 소대장과 중대장 그리고 대대부관으로 근무한후, 1950년 3월 육군소령으로 제11연대 부연대장에 임명되었으며, 5월에 중령으로 진급한 그는 한 달만에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낙동강 전선에서 활약을 펼치다가 1951년 1월 1일 제2사단 32연대장으로 가평에서 중공군과 결사 항전하여 장렬히 산화하였다.
그후 1952년 6월 16일 태극무공훈장을 받고, 한편 육군 준장으로 추서되었으며, 유해는 1961년 3월 1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장군묘역 1-5에 안장되었다.
 
부부의 애틋한 육사 사랑
  또한 故 권동찬 장군의 부인 전명식 여사는 남편을 여의고 철문점과 지물점을 운영하면서 평생을 근면 검소하게 살았다. 전 여사는 남편 모교인 육사에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5억 1천만 원을 출연하였다. 故 권동찬 장군과 전명식 여사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자 호국사 방향 도로를 '권동찬 · 전명식 路'로 명명했다. 외동딸인 권남희 여사는 매달 5만원씩 발전기금을 출연하고 있다.
 
 
성 명 (한 글) 권 동 찬 군 번 기,임관일자 전역일자
(한 자) 權 東 贊 10180 2기, 1946. 12.14 1951.1.1(전사)
주민등록번호 190215-******* 생년월일 1919.2.15
퇴직구분 전역, 퇴역, 전.공상, 기타
주 소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 신흥주공A. 114-305호
전 화 031-749-3654 (직장) -
현 직장 - 직위 -
학 력
기간 학력 사항 기간 학력 사항
1934년 보통학교 졸업 1946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1936년 철원공립보통학교    
경 력
1946년 국방경비대 제7연대 1951년 2사단 32연대장
1946년 국방경비사관학교 제 2기    
포상 및 저서
1951년 2계급 특진 장군 추서 1952년 태극무공훈장
가족 사항
전명식(처), 권남희(자녀)